詩적인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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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관측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서서 목을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방법, 잔디밭에 누워 올려다보는 방법
그런데 두 번째 방법 말이다. 우리는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주에선 방위라는 게 무의미하고, 그 우주의 무수한 별 중 하나인 지구는 계속해서 자전하고 있다.
우리는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지구를 등지고 은하수를 내려다보는 거지…
그가 특정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면 후일담 듣는 재미가 있다. 오늘도 술자리 파하고 집에 가는 길 통화를 했다. 과학이 이렇게 詩적일 수도 있다며 동석한 천문학자가 들려준 이야기란다. '지구를 등지고 은하수를 내려다본다'는 말이 어찌나 아름답게 들리던지. 그들에겐 지극히 팩트인 이야기가 우리에겐 詩적으로 다가온다. 취기 때문인지 걸어가면서 통화하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살짝 톤이 높아진 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예상치 못한 고백을 받는 느낌이었다. 사귀자, 좋아한다 같은 돌직구 고백이 아니다. 별 가득한 밤하늘 아래, 풀잎이 발목을 야들야들 간질이고 바람에 솨솨솨솨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손끝에 손끝이 와 닿는 듯한. 어렴풋한, 희미한, 아스라한, 수줍은 그런 고백. 좀 오글거리나. 그래도 그 순간엔 잠시 이런 느낌에 휩싸였다.
(또 다른 지인은) 시골 강에서, 밤에 나룻배를 타고 손으로 노를 저었단다.
강물이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물에 비친 밤하늘의 별도 팔을 타고 같이 흘러내리더란다.
삶에서 느끼는 시적인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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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 읽다가 나오는 개념어들은 일반 단어처럼 국어사전 한 번의 검색만으론 의미파악이 불가능하다. 앞뒤 문장 살피고 맥락을 파악하면서 계속해서 찾아가고 찾아내야 한다. 오늘 내가 하루 종일 붙잡고 있던 일도 비슷했다. 학생들 원고 폭풍 교정 작업. 폭교 폭교! 웬만하면 손대고 싶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문과 해독 불가능한 글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뭐라도 알아야 교정을 떠나 한 명의 독자로서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고, 수정할 수 있으니 공부(?)해야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게임과 가수에 대해서 말이다. 마인크래프트와 틴탑. 인용할만한 게 있을까 싶어 틴탑 노래 가사를 열심히 찾아보다 충격. 너무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나도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멋없다. 이런 게 나쁜남자 콘셉트인가?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오직 중독성 있는 멜로디, 트렌디한 비트와 현란한 댄스, 멤버들의 비주얼이면 충분한 것인가. 아이돌 가수의 이미지메이킹에 이거면 충분하겠다 싶지만서도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네. HOT나 god의 노래는 이러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나는 구닥다리.
왠지 모르게 너의 긴 생머리는 꽃 향기가 날 것 같아/ 미치겠네 너 땜에 나 돌 것 같아
긴 생머리 그녀 눈 감아도 생각나네/ 긴생머리 그녀 정신 나갈 것 같아/
긴 생머리 그녀 왜 이리 보고픈건지/ 나 어떡해 이제 어떡해야 해요
틴탑의 <긴 생머리 그녀> 중에서
청바지가 잘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는 여자
내 고요한 눈빛을 보면서 시력을 맞추는 여자
변진섭 <희망사항> 중에서
내가 변진섭 세대(?)는 아니지만 <긴 생머리 그녀>를 듣던 중 <희망사항>이 바로 생각나더라. 내가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는다면 세상엔 예쁜 여잔 많아/ 그 중에서도 넌 남달라/ 다들 인정하지/ 근데 있지 넌 예뻐도 너무 예뻐 이런 가사엔 꿈쩍도 안 하겠지만,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멋 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여자가 좋다고 하는 고백엔 홀라당(?) 넘어갈 것 같다. 마지막엔 희망사항 정말 거창하다며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그런 남자가 좋다고 하는 센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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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단순한 사랑 고백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괜히 혼자 민망해져서 퉁명모드나 뻔뻔모드로 바뀌기도 하고.
언젠가 '네가 뭔가에 완전히 몰입해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정, 특히 안경 쓰고 책을 집중해서 읽느라 입을 약간 헤- 벌리고 있는 모습이 좋다'는 말을 듣고 울컥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 안경 쓴 모습에 대해 좋은 말 들은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만나고 있던 이는 바로 그 모습이 너무 못생기고 멍청해 보인다며 제발 신경 쓰고 '관리' 좀 하라고 했기 때문에. 눈이 나쁘니 안경을 쓰는 게 당연하고, 도수가 높아 눈이 작아보이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 모습이 싫었던 거다. 안경이야 백 번 양보해 그렇다 치고 내가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순간, 가장 집중하고 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정을 '관리' 하라니. 그 사람은 나의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밝고 활발한 성격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 언젠가 부터 왜 이리 생각이 많냐, 너 혼자만 힘든 것도 아닌데 세상일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아라,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거 같다, 뭐 이런 유의 말을 들으면서 내 안의 우울함, 어두운 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니, 고민이라기 보단 자기부정의 시간을 보냈다. 내 안의 어두움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고, 덮어두기에 급급했다. 슬픈 일 있어도 제대로 슬퍼하지 못했고, 화나는 일 있어도 제대로 분노하지 못했다. 자잘한 부속품들이 기계를 통과하면서 정갈한 모양이 되어 나오는 것처럼, 나 역시 내 모든 감정을 웃음이라는 하나의 정갈한 표정으로 만들어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를 왜 좋아하냐는 유치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네 안에 어두움이 있기 때문에, 네 안의 어두운 면이 좋다' 어찌 보면 자기애(自己愛)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울컥 올라왔던 감정들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다 작년 가을, 친구가 자신의 책을 선물하면서 써준 글귀를 읽고 그때를 떠올린다. 사랑은 서로의 슬픔을 알아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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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밝고, 맑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에게 쓸쓸함을 느낀다. 나는 밝고, 맑고, 건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두울 때도, 우울할 때도, (정신적으로)나약해질 때도 많다.
나도 그가 밝고, 맑고, 건강한 사람이 좋다. 내가 그의 어두운, 우울한, 약한 모습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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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폭풍 원고 교정을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도 한참 됐고. 배고픔과 두통이 더 심해지려는 찰나 그에게 전화가 왔다. 총체적 난국이라며 하소연을 하고 나니 "그거 계속 보고 있으면 머리 아파올 텐데" 그런다. 내가 쓴 글, 작가들의 글 읽을 때도 그런데 아이들 글은 오죽하겠냐며. 그가 글도 쓰는 사람이라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식간에 기쁨조 된다. 금세 두통 잊고 맞장구친다.
그러고 보면 난 특별히 어둡거나, 특별히 밝은 게 아니라, 그냥 쉽게 일희일비하는 인간 아닌가 싶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