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만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야마구치 하지메

chachai 2013. 2. 18. 20:17


애무(愛撫) 사랑 애, 어루만질 무.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애정을 가지고 사람과 접촉하는 것"


나 역시 애무라는 단어에 응큼한(?) 생각부터 들어 책을 꺼내들었지만 그 응큼함은 표지사진, 아기의 발을 감싸고 있는 하트 모양의 손을 보자마자 쏙 사라져버렸다. 애무로 검색하니 N사이트, D사이트 둘 다 모드 성인 인증을 받으라고 나온다.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어쩌다 이렇게 오염돼 버린 걸까. 성인 인증이 귀찮아 클린 검색으로 해봤더니 '주로 이성을 사랑하여 어루만짐' 이라고 나온다. 맙소사 '주로 이성' 이라니. 국어사전부터 오염되어 있었구나.


책을 훑어보다가 관심이 가는 챕터가 있었으니 손, 털 그리고 간지러움에 대한 글이었다. 우선 손.

인간의 신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가장 궁금해 하는 신체 부위는 눈 그리고 손이다. 가장 진실 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을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두렵기도 한. 눈과 손은 많은 '말'을 한다. 언젠가 꼭 제대로 공부 해보고 싶은. 



손바닥은 아주 예민한 감각기관이다. 1마이크론의 아주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점자는 오로지 손끝으로만 읽을 수 있고 위조지폐 또한 시각보다는 촉각에 의해 식별된다. 이처럼 탐색기관으로 기능하는 손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 손바닥의 온도와 습도, 부드러움, 잡는 방법의 차이를 느끼고 이를 근거로 상대방의 감정까지 읽어낸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자신의 감정을 손으로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팬필드는 허먼큘러스 그림으로 뇌에서 신체 각 부위의 기능을 어느 정도 비율로 담당하는지 표현했다. 손과 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등이나 배보다 얼마나 큰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그냥 외계생명체 캐릭터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지;;


그리고 '손과 입의 감각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다'고 한다. 두 부위는 일상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움직이는 부위이고 항상 자극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계속해서 접촉해야만 한다. 

애무해야만 한다! 만져야, 한다. 조물락조물락☞☜



그리고 털.

이건 지난 번 언니들과의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제가 털로 집중되면서 관심이 생겼다. 2012년 마지막 토요일이었나, k와 학림다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문자 알림이 울린다. 발신인은 맞은 편에 앉아 <유리알 유희>를 읽고 있던 k. "미인은 팔뚝에 털이 많다더니 정말이네" 오 마이 갓. 이 얘기를 언니들에게 해줬더니 남친 귀엽네~를 시작으로 털에 대한 우리의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리 털, 인중 털, 겨드랑이 털. 자세한 이야기는 모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어 할 것이니 여기선 생략.



얼굴의 일부와 손바닥을 제외하면 사람의 몸은 많든 적든 털로 덮여 있다. 털이 있는 신체 부위는 손바닥처럼 촉각이 예민하지 않지만, 스킨십에 반응하는 C섬유라는 정서적 반응을 주관하는 신경섬유가 있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통증을 전달하는 C섬유도 있고 온도를 전달하는 C섬유도 있지만 그중에서 털이 난 피부에만 존재하는 C섬유도 있다. 이 C섬유에는 무엇인가를 식별하는 기능은 없지만 개체 간 피부 접촉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등 정서적 측면과 관련된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털을 만져주거나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주면 쾌락을 느낀다. 원숭이가 그루밍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원숭이 외에도 털이 있는 포유류는 대부분 그루밍을 좋아한다.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이나 자신과 무관한 사람이 털을 만지면 피부를 만지는 것만큼이나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낀다.

(책에서는 주로 머리카락,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간지러움.

이건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행위인데, 작년 12월 k는 나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어떤 연애적 감정 교류가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정말?) 불구하고 나에게 간지럼 태우기를 시도했다. 그것도 나의 목 뒷덜미에! k는 물론 나도 술에 꽤나 취해있었기에 무방비로 당했지만? 싫진 않았고, 아니 좋고 싫고를 떠나 물음표만 가득했다. 뭐지 이 행위는? (웃음)


다음날 점심식사 전 k와 마주보고 앉아 전날의 일을 되짚어 가던 중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제 술에 취해 나한테 엄청난 실례되는 짓을 했는데 기억나느냐고 물었더니 필름이 끊겼다며 거짓말하지 말란다. 내가 정색하며 기억 못하는 거냐고 물으니 정말 기억나는 게 없단다. 한참을 생각하던 k가 말한다. "혹시 내가 등 쪽에 손을 넣었던 거 같은데..." 네, 뭐 그 언저리에 간지러움을 태우셨죠. 어쨌든 그 며칠 뒤 술자리에서도 팔꿈치 간지럼질을 은근슬쩍 시도하더니만 k의 말대로 '우리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만 천하에 알린' 뒤로부터는 대놓고 엄청난 간지럼 태우기가 시작되었다. 간지럼 무지 잘 타는 나, 끄떡없는 그.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씩 허리 쪽을 간지럼 태우면 몸부림치며 좋아(!)하지만. 어쨌든 간지럼을 왜 이렇게 잘 탈까, 왜 간지러움을 느끼지 못할까, 간지러움에도 내성이 생기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난 번 털 토킹을 하던 언니 중 한 명이 그랬다. 털 많은 사람은 성감대가 발달되어 있다고. 하하. 물론 k에겐 조금 바꾸어 말해줬다. "털 많은 사람이 간지러움을 잘 탄대."(왜 사실대로 말을 못하니)  책에서도 말한다.


더욱이 간지럼이 성적인 흥분 상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 대학의 베지오 루지에리는 간지럼을 느끼는 방식과 섹스에 대한 불안과의 관계에 관해 연구했다. 그는 설문을 통해 섹스에 대한 불안의 정도와 간지럼을 느끼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사했다. 그 결과, 섹스에 대한 불안이 높을수록 간지럼을 느끼기까지의 시간이 길다는 것이 밝혀졌다. 섹스에 대한 불안은 피부끼리 닿는 것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피부끼리 닿는 것에 대한 방어적인 심리 상태로 인해 간지럼을 느끼기까지의 시간도 길어지는 것이다.


간지럼은 몸의 좌우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대뇌의 좌우 반구는 서로 차이가 나는 까닭에 인간의 부정적 감정은 얼굴의 좌측에 강하게 나타나고 긍정적인 감정은 오른쪽에 강하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간지럼에 대한 내성(참을 수 있는 정도)에도 신체의 좌우 차이가 있어서 일반적으로 신체의 좌측이 간지럼에 대한 내성이 높다고 한다. 즉 좌측이 우측에 비해 간지럼을 잘 못 느낀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잘 알려진 사실이라는데 나만 몰랐다. 어쨌든 나중에 그의 우측을 공격해볼 생각. 그리고 간지럼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단다.  간지러움, 가장 내밀하고도 건강한 커뮤니케이션! 


재미있는 표현도 발견했다.


촉각의 이점역치(二点閾値)

콤파스의 두 다리 사이 거리가 아주 가까워져 마치 한 점처럼 느껴지기 바로 전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두 다리를 느끼는 거리가 짧을수록 피부가 예민하다는 뜻.


애무. 터치, 스킨십, 접촉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만 가능한 것. 그러니 바로 지금, 바로 여기 함께 있는 사람에게 은근스리슬쩍 질문을 건네 볼까나. 당신의 '이점역치'는 어디인가요.



촉각은 또한 상호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손을 잡는 것은 만지고 만져지는 상호적 행위이다. 

두 사람이 아주 대등한 관계로 ‘만지고 만져지는’ 것이다.


만지고 동시에 만져지는 이러한 ‘동시적 이중성’


누군가를 만지며 동시에 내 손이 상대방의 몸에 의해 만져지는 촉각 경험은 의사소통의 근본적 형태이다. 의사소통은 항상 쌍방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