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013. 3. 27

chachai 2013. 4. 19. 15:38


도반과 일 문제로 한 편집회사 대표를 만나 점심 먹었다. 지난 사무실에서 작업한 잡지 한 권을 드렸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펼쳐보신다. "편집디자인 솜씨 좋은데, 초짜 아니죠." 칭찬의 말치곤 좀 얄궂지만 괜히 기분은 좋다. 


오후엔 그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같이 쓰는 친구들은 부산 출장. 그의 옆, 빈자리에 앉아 각자 작업하기로 했다. 그가 내려준 커피도 마시며, 틈틈이 수다도 떨고,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의논하고, 식당에 예약 전화도 하고. 내 노트북에 있던 드라마와 영화 파일 보내주면, 그의 노트북에 있는 음악이 나에게로 왔다.


사무실에 네 명의 손님이 오갔다. 최근 그는 지인의 사진전시 도록 작업을 했다. 인쇄소에서 그의 사무실로 배달된 도록을 찾으러 사진작가의 애인이 잠시 들렀고, 그가 요즘 주로 작업하고 있는 출판사의 대표가 교정한 원고를 들고 왔고, 근처 디자인 사무실의 누군가가 책을 전해주러 잠시 들렀다(오늘 옷 귀여우신데요, 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지금 브로슈어 디자인 작업을 위해 손님 두 명이 또 찾아왔다. 일을 의뢰하러 온 입장이니 '당연'하게도 그의 작업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깔끔하고 보기 좋은 디자인. 한 눈에 확, 들어오는 디자인.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그가 디자인 한 몇몇 책들은 멀리서 봐도 누구 디자인인 줄 딱 알겠다는. 기분 좋은 칭찬이겠다. 


글쓰기도 그렇다. 문장 몇 줄만 읽어도 그 작가의 이름이 떠오른다면 그건 좋은 글일 게다. 작가 고유의 문체가 담겨 있는 글은 작가의 개성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 북 디자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걸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겠지만. 얼마 전 그와 유방논문을 먹으며 만약 한 달 동안 자기가 원하는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번역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일단 책을 계속 읽을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공부인데,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데다 그걸 또 나의 언어로 풀어낸다는 게 매력적이란다. 자신이 하는 일도 결국은 번역 작업이라고 했다. 글을 디자인으로.

디자인은 그 책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아니기도 하다. 하나의 단어(하나의 언어)를 또 다른 단어(다른 나라의 언어)로 바꾸는 건 결국 그 단어의 뜻 전부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다. 

변역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이라 나와있다. '옮김' 글의 옮김, 말의 옮김, 생각의 옮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에 대한 옮김. 참 많은 것들을 옮기면서 산다. 늘 지겹도록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해석하고 수많은 감정과 상황으로 대입시켜보며 가장 맘에 드는 경우를 골라와 옮겨 저장한다. 이런 번역작업은 조금 제멋대로에다 자기중심적이다. 내 감정에 대해 얼마만큼 깊게 파고 들어가느냐, 그 상황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니까. 사유 없는 '옮김'은 그냥 '전달'이나 다름없다.


그의 손님들이 갈 준비를 한다. 사무실 문 앞에서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선 그는 어색하지만 확실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겠지. 그러면 나도 어색하지만 확실한 미소를 짓겠지. 배고프다. 슬슬 장소를 '옮겨볼까' 한다. 무엇을 먹을 지에 대한 우리의 깊은 고민이 담긴 그런 장소로 옮겨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