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아빠를 만났다. 별 생각 없이 인사동 조금에 가서 돌솥밥 사드릴까 했는데, 카페 마마스에 가자신다. 한식 싫다고. 맞다, 그랬지. 아빠는 한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피자나 치킨을 먹고 패밀리 레스토랑 가는 걸 참 좋아했다. 

90년대 초반, 체인형 패스트 푸드점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 주말이면 아빠 차를 타고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문정동 훼미리아파트 단지에 있는 KFC에서 핑거휠레 세트를 사오곤 했다. 개롱역에 피자헛이 생긴 뒤론 단골이 되었다. 나는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아빠는 미트볼 스파게티를 시켜주었다. (도넛 모양으로 생긴 검정색 토핑ㅡ올리브라는 건 다 커서 알았다ㅡ을 너무 싫어해서 한 조각 이상 먹지 않았다.) 올림픽공원 근처에 생긴 패밀리 레스토랑 코코스는 특별한 날에 외식하러 가는 곳이었고, 항상 자동차 모양의 접시에 나오는 어린이 세트를 먹었다. 코코스가 사라졌을 때즈음 개롱역 사거리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겼다. 프랜차이즈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름도 메뉴도 분위기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유독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엄마가 직원에게 혹시 김치 있으면 조금만 가져다 줄 수 있냐고 물었고, 몇 분 뒤 직원이 피클이나 케첩을 담는 작은 볼에 배추 김치를 담아 가지고 왔다. 엄마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한식이 최고라고, 국과 김치 없으면 밥 못 먹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엔 주로 베니건스에 갔다. 아빠는 매번 치킨샐러드와 토마토 해물 스파게티, 퀘사디야를 시켰다. 그즈음 나는 친구들과 아웃백을 즐겨 갔는데, 종종 베니건스 대신 아웃백에 가자고 하면 아빠는 마지 못해 가서는 베니건스 음식이 최고라 했다. 나와 친구들이 체인점이 아닌, 맛있고 멋진 식당을 찾아 다닐 때에도 아빠는 베니건스에 가자고 했다. 베니건스가 마켓오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메뉴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을 때에도 치킨샐러드와 해물 스파게티, 퀘사디야를 먹을 수 있어 좋아했고, 이렇게 맛있는 베니건스 올림픽공원점이 문 닫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는 2000년대 이후 외국에 거주하셔서 한국 외식산업의 흐름을 전혀 캐치하지 못함.)

2010년이었나. 베니건스 올림픽점이 완전히 마켓오로 바뀐 뒤에는 주로 미스터피자에 갔다. 아빠에게 피자헛 보다 맛있는 새로운 맛집이 생긴 것이다. (동생이 훈련소 들어가는 날에도 의정부 미스터피자에 갔다.)

2014년이었나. 아빠에게 새로운 맛집이 생겼으니 '카페 마마스'. 카페 마마스 시청역점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오늘 아빠는 오랜만에 '시내(아빠에게 '시내'란 종로 일대)'에 나왔으니 카페 마마스에 가자고 한 것이다. 광화문점에 갔더니 놀라셨다. 시청역에만 있는 줄 알았다고. 


아빠는 주말이 되면 종종 팬케이크나 미트볼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었다. 면 삶고 시판 소스 붓는 간단한 방법으로. 아빠가 딱히 요리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주말에 아이들과 잘 놀아줬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과 본인의 먹고싶음과 귀차니즘 속에서 떠밀리듯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지만 어린 나에게 꽤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아이였지만, 어린 나와 동생에게 외식이란 단어만큼 설레고, 치킨이나 스파게티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었을 테니. 

그런데 요즘은 이런 기억 사이 사이에 자꾸 다른 기억이 끼어든다. 아빠, 아주 어린 나와 동생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옆에 분명 엄마가 있는데, 엄마는 밥을 먹고 있진 않다. 전기밥솥 뚜껑이 열려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핀잔을 주며 붕어라고 놀린다. 돌아서면 까먹는다고. 나와 동생도 덩달아 '엄마는 붕어'라고 놀린다. 엄마는 웃는다. 

또 다른 기억이 끼어든다. 엄마에게 '밥팅아'라고 말하는 아빠 목소리. 친근하게 애칭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 당연히 아니다. 그리고 늘 거실 TV 소리를 등진 채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하던 엄마 모습도. 거실에 편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엄마 주변을 서성이는 나의 모습도. 


저녁 먹고 아빠와 헤어져 집에 가는 길. 내가 아빠와 만나는 데는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빠는 잡다한 지식이 좀 있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다지 깊지 않고 정확한 정보가 아닐 때가 잦다. 매우 맨스플레이너인 것이다. "야 아빠 고등학교 때는" "아빠 젊었을 때는" 이런 말이 문장의 시작에 자주 등장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땐 그랬지, 하며 3초간 추억에 젖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 그런데 내 인생에 대해선 한번도 맨스플레인하거나 꼰대 짓을 한 적이 없다. 큰 소리 치거나 명령한 적도 없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 한의대 진학 및 중국 유학을 권유한 적 있음. 싫음 말고. 끝.) 물론 오늘 이직 준비 중인 나에게 "그 업계…… 업종 바꿀 생각 없냐?"고 한 것이 전부. 이것이 전부다. 심지어 이사했다고 말하니 어디에 사니, 누구와 사니, 어떤 사람이니, 집은 안전하니, 묻지도 않음. (너무 안 물어보아서... 내가 먼저 말하였다.)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했던 걱정의 말들과 걱정으로 위장한 말들을 떠올려 본다. 아빠의 걱정과 엄마의 걱정은 참 다르다. 걱정하는 지점도 정말 다르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할아버지도 사촌오빠도 조심해야 한다고. 난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작년 이맘 때, 나는 엄마에게 왜 나에게는 맨날 남자 조심하라고 하면서 동생(남)에게는 화 난다고 여자 때리지 마라, 여자 강간하지 마라, 가르치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추석에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하루는 날 잡고 영화 몇 편을 연달아 보았는데, 그중 한 편은 <비밀은 없다> 

손예진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대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맴돈다. 연진과 미옥의 공연을 보고 팬이 되어버린 여고생의 대사까지.

억장이 무너졌던 마지막 장면. 난 그 장면에 대해서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씨네21 이혜리 기자님의 말을 빌려 본다.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딸만큼 여성혐오의 언어에 능통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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