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굴드를 다룬 부분을 읽고 있다. 굴드가 에세이와 픽션에서 종종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며 소개 된 책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어 책에 대해 찾아보고 있는데 마침 굴드를 좋아하는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몰락하는 자, 라는 책 읽어봤어요?
- 아니. 누구 책? 제목 좋네.
- 토마스 베른하르트, 라는 독일 작가. 이 책에 글렌 굴드가 등장한다네. 궁금해서. 혹시 읽어 봤나 했죠
- 아 베른하르트. 다른 책 읽다만 적 있어요. 잘 안 읽히던데
- 소멸?ㅎㅎ
- (앗!)
제목 좋네. 잠시 '몰락'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몰락沒落
1) 쇠하여 보잘 것 없어지다
2) 멸망하여 모조리 없어짐
나에게 몰락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아름다운 단어로 남아있는데 사전 상 의미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한참을 생각하다 내 책꽂이에 '몰락'이 들어가는 책 한 권을 기억해낸다. 『몰락의 에티카』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니체의 문장과 함께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로 책은 시작한다. 쇠하여 보잘 것 없어진 것이, 멸망하여 모조리 없어진 것이 '몰락'이나,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기에 몰락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고, 문학에 매료되고, 신형철의 문장에 매료되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사이드는 아도르노가 자신과 독자 사이의 공통의 이해 기반에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썼다고 하지만 나는 사이드 또한 그렇다고 본다. 음악, 특히 오페라에는 완전 문외한인지라. 유투브로 슈트라우스나 모차르트의 <코시 판 투테>를 찾아 듣는다 해서 그것들에 담긴 '말년성'을 어찌 읽어낼 수 있겠는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것보다는 '말년성' 그 자체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 의도적으로 비생산적은 생산력을 수반하는, 화해 불가능한 요소들, 늙어가지만 정신적으로는 민첩한, 금욕적인 평온함이나 향기로운 원숙함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어쩌면 말년의 양식은 또 하나의 몰락의 에티카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다시 신형철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야망" 보다는 "차라리 압도적은 특수성 혹은 매혹적인 주관성"인 것들.
沒 빠지다, 가라앉다, 다하다, 바닥나다, 落 떨어지다, 떨어뜨리다, 쓸쓸하다, 이 글자의 뜻이 문학이고 예술이기도 하지 않던가. 落은 떨어지다, 떨어뜨리다, 쓸쓸하다의 뜻도 있지만 이루다, 준공하다는 뜻도 있다. 온 몸을 던져 빠지고, 가라앉고, 바닥나고, 함락되어(沒) 본 자만이 무언가를 이룰 수도 있다. 그 이룸이 실패 끝에 오는 성공담만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탑방 '수업' 후기 (0) | 2013.10.18 |
---|---|
드물게 아름다웠던 (0) | 2013.10.14 |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0) | 2013.10.13 |
여덟 번째 수업 후기 (0) | 2013.10.10 |
썩 괜찮았던 (0) | 2013.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