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작성해오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명사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문장으로 써야한다는 주의사항과 함께. 나는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니 재미있고 '쉬운' 과제라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 놓고 있다가 과제 제출 전날이 되어서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곧 엄청난 당혹감에 휩싸였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 좋다, 싫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남발하고 다녔으면서 말이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뭔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기나 했던 걸까? 흔히 갖다 붙이곤 했던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은 빈곤한 사유에 대한 변명일 뿐. 호불호가 강한 사람인 '척'은 하면서, 정작 그것을 드러내야하는 순간이 오면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나 허허허허 하면서 무슨 (야매)도인처럼 행동한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 "난 **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해요."라는 식의 얘기들을 하는데, 이는 자신의 취향이 아직 유아기라는 걸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기를 좋아하는 식성을 가졌다면 고기에 남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있고 그러다 보면 고기의 맛과 질에 대해 알게 모르게 자신을 교육하게 된다. 어느 부위가 입맛에 맞고 어디 산이 맛이 좋고 어떻게 조리를 해야 하는지 남보다 많이 알게 되고 남보다 예민한 감식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의 머릿속에 얻어지는 것이 '맛이 위계'다. 이는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과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 사람은 자신의 변별력에 대한 일종의 권위까지 갖게 된다. 어린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방향성을 자신과 남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유의미하지만 어른이 되어서까지 단순히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버틸 수는 없다. 느끼고 배우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 없듯이, 미적 경험과 교육으로 연마되지 않는 취향이란 취향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 사물을 깊이 있게 차별해서 지각하고 보는 경험은 일생 동안 축적이 되고 결국 독특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그게 취향이에요.


- 대면이라는 '현재'가 주는 압박 때문에 잘 모르고 지나친 경우라도 결국은 기억 속에 경험하게 된다.

  기억이라는 시詩적 필터로 걸러진 향기와 소리와 질감과 이미지 속에서 자꾸 서성이게 되는 것이다.


- 장 그르니에가 그랬다. 인생이 동트는 시기에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고. 나는 이를 일종의 미적 체험의 순간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문득 보게 된 한 포기의 풀, 한조각 하늘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이러한 미적 인상은 우리 삶의 은밀한 강력한 바탕이 된다.             

 



미적인 경험을 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기도 하고, 작가가 인터뷰이들에게 던진 질문들을 나에게 해본다. 

"자신의 패션에 영향을 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결정적인 사건까진 아니고 문득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그날그날 입은 옷에 대한 기록이 그림과 함께 있다. 임용고시 합격 후 우리 반으로 첫 발령을 받은, 지금 내 나이 대였던 담임선생님과는 일기장을 통해 옷 이야기, 만화책 이야기 참 많이 했었다. 일기장엔 '참 잘했어요'가 아닌, '오늘 네가 입은 옷 완전 선생님 스타일이었어' '이 날 네가 입었던 옷은 어른 사이즈도 있었으면 좋겠네' 같은 코멘트가 대부분. 물론 반 친구들은 나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당시 아이들이 즐겨 입던 가수 SES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선생님의 반응에 더욱 힘을 얻었다면 지금쯤 꽤 패셔너블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때의 난 선생님보다 친구들의 반응에 더 민감했다. 어떤 스타일에 영향을 준 사건이라기 보단, 옷을 고를 때 영향을 미친 사건 같다고 하면 너무 끼워 맞추기식인가? 길가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스타일의 옷을 입은 불특정 다수의 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지나치게 튀는 것도 싫어 과감한 결정은 하지 못한다. 과감함보단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한데, 잘 어울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용기(?)가 부족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항상 검정이나 회색 같은 적당한 색들하고만 타협하고 있는 건지도.



느긋한 마음을 갖고 무언가를 응시하기. '깊이 있게 차별을 두고 바라보기'

시詩적인 필터링. 은밀한 강력한 깊은 바탕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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