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집 근처 네일숍을 갔는데, 내 손톱을 보고도 특별한 반응이 없다. 이젠 손톱 길이가 정상 궤도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하긴, 드디어 손톱에 초승달이 떴으니 말이다.

 

다듬고 영양제만 바르려고 했는데 가격 차이 없다는 말을 들으니 색칠도 해야겠구나 싶었다. 버건디, 강렬한 색을 발라보고 싶었지만 이번엔 컬러 칠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베이지 톤으로. 가끔 베이지 톤을 고르면 파스텔톤의 여리여리한 분홍색을 추천해준다. 손가락이 짧고 굵은 나에겐 영 어울리지 않는 색. 왠지 레이스 겹겹이 달린 블라우스라도 입어야할 것 같고. 이번에 고른 색은 사실 베이지보다는 불투명한 영양제를 바른 듯하다. 바른 듯 안 바른 듯 이런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게 손을 쭈윽 펴고 계속 쳐다보게 된다. 내 손에 자아 도취한 건지, 손톱만 어느 정도 길러도 손이 예쁘게 보일 수 있구나 싶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손가락 털까지 밀어버렸다.

 

나는 몸에 전체적으로 털이 많은 편인데, 겨드랑이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제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특별히 털이 많거나 굵은 것도 아닌데 하복을 입기 시작하면 다리 제모를 시작한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친구는 팔은 물론 손등과 손가락에 난 털도 민단다. 늘 집에서 밀다가 때론 왁싱까지 하러가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했고, 나도 그렇게 ‘관리’를 해주어야 하나 싶어 어느 날 겨드랑이 털 밀면서 팔, 다리 털 쓱쓱 밀고 여름 내내 후회했다. 이삼 일 뒤면 올라오는 그 거뭇거뭇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손톱깎이로 손톱 깎다 말고 이제 막 올라온 털을 거침없이 뽑아댔다. 그 해 여름이 끝나고 다시 춘추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껏 털을 기를 수(!) 있었지. 


그리고 몇 년 만에 손가락 털을 밀어버린 나는 초승달 뜬 단정한 내 손톱과 털이 사라진 내 손가락을 바라보며 혼자 뿌듯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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