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에 사는 사촌동생과 페북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회사 일 때문에 사촌언니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우리가 사용한 언어는 영어(그가 미국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키보드엔 당연히, 한글이 없다). 나의 초라한 영어실력, 게다가 한국은 새벽. 졸음이 밀려와 컴퓨터를 끄려는 찰나 받은 메시지였기에 다시 정신 차리고 영어단어 쥐어짜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자러가겠다고 인사하려는데 그가 보낸 메시지.


just buy some tangsuyuk and give it to my mom to bring back to america ...


my mom, 나에겐 고모다.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나온 고모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탕수육도 같이 보내라는 것.



어렸을 적, 여름방학마다 한국에 나오던 미국고모가족. 그 사촌동생이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한 날이 가까워지면 마트에 가서 홈런볼 한 박스를 사두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 한국 도착한 첫 날 중국집, 떠나기 전 날 중국집,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중국집.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한국음식'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었다. 지난 여름 교환학생으로 중국에서 6개월 정도 지낸 그의 가장 큰 불만은 이곳엔 왜 맛있는 탕수육과 짜장면 파는 곳이 없냐는 것이었다.


어쨌든, tangsuyuk. 한시라도 빨리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던 나는 알겠다고 i'll buy some tangsuyuk and … 짜장면 마침표. 이렇게 보내고 싶었는데 그때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짜장면이라고 해야 하나, 자장면이라고 해야 하나. 'ㅈ'은 j를 써야겠지, ㅉ은 cha를 써야하… 아냐, 당연히 jj겠지. 그렇다면 jjajang이라고 써야겠네. 아니지 '자장면'이 표준어니까 jajang이라고 써야해. 그런데 작년인가 제 작년부터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이 됐으니까 jjajang이라고 써도 되는 거 아닌가? 아니야, 그래도 jajang이라고 써야…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쓰자 jjajang. 앗 그런데 '면'은 myun이라고 써야하나 myeon하나. mmmmm… 아아 모르겠다. 생각하기 싫어. 나 졸려. 면인들 누들인들 알아듣기만 하면 되는 거지 뭐. 면, 누들, noodle. 일단 쓰고 보자.


i'll buy some tangsuyuk and jjajang noodle.


그리고 바로 사촌동생의 답이 왔다.


your words are cheap


cheap 그렇다 나의 단어, 싸구려 단어. 파전을 korean pizza라고 말하는 저급함, 호떡을 korean pan cake라고 말하는 천박함.

냉면을 cold noodle으로 표기하는 지나친 혹은 수준 낮은 친절함과 다를 바 없는.



며칠 전 홍대에 있는 한 이자카야에 갔다. 이곳 메뉴는 다른 이자카야에 비해 음식 종류가 아주 다양했는데 문제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오니기리. 그래 이건 주먹밥이야. 우메보시가 매실 장아찌인 건 알겠는데 그럼 쯔게모노는? 쯔게모노(채소 절임, 일본식 김치라 할 수 있다) 종류 란에 우메보시가 있으니 절임 종류 같은 건가? 시바즈께(가지절임)는 뭐고 야마고보(산우엉)는 뭐란 말이냐. 이나리(유부초밥), 야사이이따메(일본식 야채 볶음), 아게다시도후(두부요리), 쟈가이모(일본식 감자떡), 노리마키(김초밥) 등등. 음식명 그대로 표기한 건 좋은데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결국 이름에서 아우라가 풍기는(?) 걸 몇 개 골라 검색해보거나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일본어 공부하러 이곳에 온 건 아니지만, 앞으로 한식을 제외한 딱 한 나라의 음식만을 남은 평생 먹고 살아야 한다면 어느 나라를 선택하겠어요? 라는 그의 질문에 일식이요!라고 말했던 나, 그리고 나도요, 라고 말했던 그였기에. 이 정도 쯤이야 만약을 대비해 얼마든지 수고로울 수 있다(?).


최근에 단무지가 사실은 일본의 한 스님이 만든 음식이며, 원래는 다꽝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알았다(나는 '닭광'인 줄 알고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たくあん: 다꾸앙, 다꽝이다). n사이트 사전을 찾아보니 단무지는 ‘무를 시들시들하게 말려 소금에 절여서 쌀의 속겨로 격지를 지어 담가 만다는 일본식 짠지’를 말한다. '일본식' 짠지. 비슷한 말로는 무절이가 있는데 무절이를 검색하면 같은 말이 단무지라 되어있다. 잘못된 표현으로 다꾸앙, 다꽝이라는 일본식 발음이 나와 있는데 단무지가 '일본식' 짠지라면 다꽝이 맞는 표기 아닌가 싶다. 진짜 한국 무절이(냉면에 올라가 있는?) 혹은 동치미(너무 급이 다른가?)를 일본에서 다꽝이라 하면 우리는 '김치'를 '기무치'라고 하는 것만큼 화나지 않겠는가. (다꽝과 단무지에 대해선 좀 더 찾아봐야 겠다)




                                                                                                                                     your words are cheap

어쨌든 짜장면은 jajangmyeon이다. 혹은 jjajangmyeon이거나. 짜장(자장)누들 아니다.



덧) 며칠 전 친구들과 커피빈에 갔는데 우리 네 명 각각 다른 음료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페모카, 차이라떼. 같은 모양, 같은 크기 종이컵 위 뚜껑엔 네임펜으로 각각 USA, CL, CM, Chai(차이라떼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커피빈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chai라 썼다)라 쓰여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친구가 물었다. 


"왜 내 음료엔 USA라 쓰여 있지?" 


"아메리카, 노, 잖아요. 아메리카, 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 줄여서 USA. 저 예전에 커피빈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그렇게 쓰라고 교육받았어요." 


잠깐의 침묵, 그리고 모두 빵, 터졌다. 이럴 수가. 그냥 A라 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방금 검색해보니 에스프레소에 적당량의 뜨거운 물을 섞는 방식이 연한 커피를 즐기는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라 하여 '아메리카노'라 부른단다. 그렇다면 나는 또 막연하게 알고 있는 USA와 America의 차이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봐야 하는데. 아이고, 아이고,


오늘은 여기까지. 이름이란 참으로 고집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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