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모두가 좋아했던 시 <음악>을 지선샘이 읽어주면서 세미나를 시작 했어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은 어떤 삶일까요?

반대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은 어떤 삶일까요? 

지선샘이 70년 가까이 초밥을 만드신 초밥 장인 지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자기가 하는 일에 '의문을 갖지 말라'고 하셨다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의 견딤. 우직함이, 미련이 삶에서 미덕이 될 수 있네요.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음악, 특히 가사 있는 음악을 들을 때 격하게 공감하는 느낌, 음악 들으며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느낌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후기 쓰려고 시를 다시 읽다 보니, 지금 나의 삶이 음악 그 자체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뒤에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고 느낀 건 아니었을까요.



  바깥의 밤은 하염없는 등불 하나

  애인으로 삼아서

  우리는 밤 깊어가도록 사랑한다

  우리 몸 속에 하염없는 등불 하나씩 빛나서

  무르팍으로 기어 거기 가기 위해

  무르팍 사이로 너는 온 힘을 모은다

  등불을 떠받치는 무쇠 지주에 차가운 이슬이

  맺힐 때 나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저승으로 넘겨준다 이제 안심하고 꺼지거라

  천도 복숭아 같은 밤의 등불



단편 소설 한 편을 쓰고 컴백한 말미는 <봄밤>을 읽으며 "제가 초등학교 때……" 오랜만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러기엔 시가 조금 에로틱? 했던 거 같은데 말이죠(므흣). 시 읽을 때마다 깨알 같은 에피스도 기대할게요.



   2.

  한때 그는 벌집같이 많은 눈을 가졌네 이제 씨가 빠진 해바라기 꽃대궁처럼

  그의 눈은 텅텅 비었네 그의 고통은 말라버렸네 겨울에 그의 꽃대궁이 꺾여

  눈발에 묻힐 때 그의 생애는 완성되네 그가 본 것은 환상이었네

  <천사의 눈>


함께 이야기했던 최승자의 <시인 이성복에게>를 찾아봤어요.


  현기증 꼭대기에서 어질머리 춤추누나.

  아름다운 꼽추 찬란한 맹인.

  환상이 네 눈을 갉아먹었다.

  현실이 네 눈에 개눈을 박았다.

  (그래서 네겐 바람의 빛깔도 보이지)

  

  ……

  행복이 없어 행복한 너

  절망이 모자라 절망하는 너

  무엇이나 되고 싶은 너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은 너

  

  영원히 펄럭이고저!

  눈알도 아니 달고

  척추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

  바다의 날개……

  하늘의 지느러미……)



이성복 시인에게 죽음이 환상을 보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 죽음은 단순히 소멸이나 무(無)가 아닌, <천국의 입구>에서 보여주는 이미지 '삼월인데 땅속 보리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 검게 죽은 땅이 아스팔트처럼 굳어 있었다 / 그래도 하루하루 낚시찌 같은 날들이 떠올랐다 또 가라앉았다', '어젯밤 후배 하나가 다른 후배의 배를 칼로 찔렀는데 피가 안 나왔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의 모든 죄는 느낌없음" 이라고 했던 가요,

 볼 수 없음, 느낄 수 없음, 아플 수 없음



지선샘이 읽어준 이성복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 중 바슬라프 니진스키에 대한 글


그의 상처는 느낌으로부터 온다. 모든 느낌은 그에게 날카로운 칼끝으로 다가오며, 그 칼끝보다 더 지독한 것은 타인의 느낌 없음이다. "내 아내는 많이 생각하지만 거의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 목구멍은 눈물로 꽉 차올라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그가 그의 삶을 그토록 괴롭혔던 것은 세상의 모든 죄는 느낌 없음으로부터 저질러지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느낌 없음 때문에 병든 니체가 이태리에서 말을 때리는 마부의 채찍을 온몸으로 가로막았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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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라는 시를 읽으니 엄마 팔의 흉터가 떠올랐다. 흉터(혹은 상처)에 관한 짧은 글을 한 편 쓰다 말았다. 난 엄마와 관련된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상하리만치 신경이 곤두선다. a4 반 페이지 정도 쓴 뒤 더 이상 나가질 못했다. 이 상태로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꼭 다시 이어 써보고 싶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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