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잃어 버렸다.
'인간 내비'라 불리는 내가 길을 잃다니. 12시에서 3시로 늦춰진 약속시간이 날 방심하게 만들었고 서둘러 나오느라 위치를 메모해둔 종이는 책상에 올려두고 나와 버렸다. 문래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문래예술공장으로 가주세요.” 당연히 길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기사님 왈, 여기가 문래동은 맞는데 예술공장이라는 곳은 처음 들어본단다. 철공소가 몰려있는 곳이라고, 영등포 등기소 근처에 있는 곳이라 설명을 드렸지만 모르신다. 기억을 더듬어 대충 느낌이 오는 곳에서 내렸더니 눈 앞엔 좁은 골목길 입구가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서둘러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서울이라는 도심 한 복판에서 이런 이질적인 장소를 보게 되다니. 낯선 곳에 호기심을 느끼며, 오히려 예술공장을 늦게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지각중' 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린 것이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옹기종기 한 줄로 붙어있는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벽과 녹슨 철문이 달린 낡은 단층의 건물들, 곳곳에 색깔 별로 모양 별로 쌓아놓은 각종 자재들과 신기한 모양의 기계들. 토요일이라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몇몇 곳은 가동 중이었는데, 작업 중인 아저씨들께 “여기 문래예술공장은 어디 있어요?” 물으면 왜 이런 곳에서 '예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을 찾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여긴 문래3동인데…"라고 대답하셨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은 추위에 무너졌고, 저 멀리 보이는 부동산 건물로 쫓아 들어가 예술공장 위치를 물었다. 부동산 아저씨가 알려준 길로 허겁지겁 달리다보니 방금까지 있었던 곳과는 또 다른 느낌의 철공소 골목길이 보인다. 잠시 멈칫하지만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마침 초록 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내겐 너무 거대한 그곳
오래된 소규모 철공소들이 남아있는 공장지역에 입주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모여있는 창작촌.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으로 형성된 공간에 대한 어떤 낭만(?), 혹은 설레임으로 가득 찼던 나는 잘빠진 콘크리트 외벽의 건물을 보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서있는 이 건물이 정말 '예술공장'이란 말인가. 여기 뭐하는 데야?
문래예술공장은 자생적으로 형성된 문래 창작촌의 작가들을 비롯한 신진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위탁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이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공간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는데, 과연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이 ‘건물’이 예술을, 예술가들을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시켜 대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영등포역 기찻길과 주변에 높이 솟아 있는 건물들, 그와 대조되는 낡고 낮은 주택단지들, 이 부조화를 조금이라도 가리고 싶은 건지 앙상하게 뻗어있는 나뭇가지들, 찬 바람 속에서도 이들을 연결해주려는 듯한 한낮의 햇살…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는 영등포구 문래동의 모습.

( * 예술공장 담당자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추후 보충 예정)










 

 

 



낯선 골목에서
철공소들이 모여 있는 진짜 창작촌에 가기로 했다. 영하 15도. 날씨는 지독하게 추웠지만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걷는 것을 택했다. 짧은 거리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공장’과 지금 찾아갈 또 다른 ‘공장’의 거리를, 그 주변 환경을 직접 둘러보며 가고 싶었다.
에이스하이테크시티라는 커다란 건물 뒤쪽의 작은 골목길은 마치 시공간을 뒤집어 놓는 통로인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높은 주상복합건물이나 아파트와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 자동차의 소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처음 길을 잃고 헤맸던 문래 3동의 철공소와는 또 다른 모습을 한 곳. 철공소가 돌아가지 않는 토요일 오후라 더욱 그랬겠지만, 그곳의 고요함과 녹슨 잿빛 건물들 사이에서 나는 또다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골목 입구 음식점에 그려져 있는 꽃 벽화, 녹슨 철문 위에 그려진 구름과 잠자리 그림이 너무나 쓸쓸하다 못해 초라해 보인 것은 나의 과장된 느낌일까.       어느 철공소 건물로 들어섰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원색의 페인트칠을 한 벽과 화장실, 곳곳에 달린 작품들로 그곳에 입주한 작가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닫히지 않는 문, 곳곳에 튀어나온 철근 구조물들, 사방에서 쏟아지는 감각을 잃게 하는 차가운 공기…. 3층의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나무 땔감 넣는 난로의 쾌쾌한 냄새와 뿌연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정말 이런 곳에서 작품 활동이 가능할까?’ 너무나 열악한 환경. 예술, 창작촌에 대한 ‘환상’이라는 연기는 사라졌고 눈앞엔 그들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난로를 중심으로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전기도 끊겼다. 난로에서 세 발자국만 떨어져도 추위가 달리 느껴졌으며, 뭔가를 보려면 형광등 대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의지해야 했다. 문래예술공장과는 구분되는 문래예술공단. 이곳이 바로 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문래예술창작촌, 바로 문래예술 ‘공단’인 것이다. 


































다섯 개의 욕망이 공존하는 곳
1.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이곳에 모인 예술가들. 철강소가 문을 닫는 6시 이후부터는 예술가들의 공간이 된다.
    (조용
히 개인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들+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
2. 서울시 컬쳐노믹스 사업의 일환으로 유휴공간을 재생, 이런 아트 팩토리를 만들었다. 문래예술공장을 세우고 위탁 운영 중.
     개
발지역으로 선정된 곳에 공장을 세워버리는 모순에 빠짐.
3. 땅값이 오르니 재개발에 적극 찬성하는 건물주들.
4. 철공소 이전은 중장비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곳이 계속 유지되기를 원하는 철공소 사장님들.
5. 주변 지역 재개발로 자신들의 집값이 더 뛰기를 바라고 있는, 예술공단을 혐오시설로 생각하며 꾸준히 민원을 넣는 주민들.


: 나는 예술가들의 어떤 낭만적인 공간을 생각하며 오늘 이곳에 왔다. 그 ‘낭만적인 공간’이란 그동안 매체에서 말한 문래예술공단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빛을 잃어버린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다시금 어떠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이곳을 더 지속가능한 곳으로 되살리고 싶지 않은가, 그에 대한 대안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은 없는지.

송수연 팀장 : 솔직히 말하면 나는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다. 이곳에 오시기 전 들렀던 문래예술공장에서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창작자들을 지원하고 공간을 활성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곳,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은 엄청나다. 그와 분리해서 우리는 여기를 ‘공단’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다 재개발지역으로 선정이 되고, 매체들은 이곳을 과대포장한 채로 방송을 한다. 그것이 내부균열까지 키워놓았다.


작가이자 기획자는 소수이며 내부 사람들만의 시간과 커뮤니케이션도 충분치 못한 때에 외부 관심이 집중되면 그만큼 내부 균열이 심해진다고 한다. 외부인들은 예술가들과 그들이 느끼는 괴리감, 무엇보다도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한국에서 '사유화'라는 개념은 (참고 도서인 <부동산 계급사회>를 읽으면서 일제강점기 이후 ‘사유화’라는 개념이 어떤 식으로 국민 정서에 영향을 끼쳤고 그것이 부동산 투기로까지 이어져왔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유일하게 물질적인 결과물로 보여 지는 미술작품, 작품에 대한 사유화 그리고 작가주의. 이 모든 것들은 장르 간의 이해와 소통을 부족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장르 간의 융합이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내부의 문제인 것이다.


워크숍 첫 번째 시간, 외국 사례 분석 결과, 재생프로젝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계획, 전문가들의 자문, 지속가능성(sustainable). 
이것들의 결핍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송수연 팀장님의 설명이 끝나니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보기 위해 핸드폰 화면에 의지해야 했다. 지금 이곳은 작은 핸드폰 화면 불빛만한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을까. 포장된 낭만의 공간이 아닌, 개발 대상이 아닌 재생 가능한 공간으로, 나아가 지속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 할 수 없을까.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내부 커뮤니티부터 살리는 것이 아닐까. 너무 진부한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소통'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 출발점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함께 어우러져 나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 기획하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201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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