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자주 듣는 단어가 어느 날 문득 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무심코 흘려버린 단어가 깊이 다가와 박히는 때가 있다.


'작가는 삶에 대한 옹호자다'


삶에 대한 옹호,

옹호,

옹호, 擁護

안다  잡다  지키다   옹擁

보호하다                호護

두둔하고 편들어 지키다

삶에 대한 옹호


삶에 대한 옹호, 나의 삶, 나의 삶에 대한, 내 삶에 대한 옹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옹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삶에 대한 '옹호'가 어쩐지 비겁하고 변명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라고 얘기했을 때 k는 나에게 <남한산성>을 빌려주었다. 궁금했지만 선뜻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훈은 나에게 그런 작가였다. 겨우 단편 몇 편 읽고선 나랑은 맞지 않는 작가라고 성급하게 결론지었다. 누군가 인용한 <밥벌이의 지겨움>에 실린 한 편의 글을 읽고는 가끔 알라딘중고서점에서 절판된 이 책을 검색하곤 했지만. 

며칠 전 책상 위의 분홍색 책이 눈에 들어왔고, 읽기 시작했다.         감정과잉의 총체적 난국이었던 지난 나는 김훈의 무심한 듯 절도 있는 문체를 미워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를 찾다가 우연히 들어가보게 된 몇몇 블로그에서 리뷰를 몇 개 읽었다. 나와는 극단적으로 다르게 읽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치욕'과 '굴욕'이란 단어를 참 잘도 써대는구나 싶고. 3-40대 남성은 왜 김훈에 열광하는가, 이런 문구를 보면 여전히 불편하다(내가 혹시 저런 기사의 카피 때문에 이 책을 기피했나ㅎㅎㅎ).

어쨌든 아직 읽고 있는 중.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삶의 변명이 되지 않길 바란다,는 것은 나의 오만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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