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했다. 강남역 근처의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년 전 겨울이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일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저녁에 스터디 모임이 있는 날이면 퇴근하자마자 재빠르게 회사 건물 앞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화요일과 목요일, 언제나 같은 시간. 나는 집으로 가는 잠실역 방향이 아닌 합정역 방향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 겨울에서 봄이 가까워질 무렵부터였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 2호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리가 나면 앉아서 가겠다는 기대도 없이 지하철 출입문에 몸을 기대었다. 창문에 비치는 건 내 모습뿐이었지만 나는 컴컴한 저 너머의 무엇을 멍하니 바라보며 덜컹덜컹, 지하철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 속 내 얼굴이 흐려진다. 페이드-아웃, 아니 페이드-인 되면서 이내 다른 무엇과 내 얼굴이 겹쳤고 곧 낯선 풍경이 나타났다. 그리고 내게로 쏟아지던 빛. 지하철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던 빛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울고 말았다. 14층 사무실 창가자리에서 일하던 나는 해가 저물어갈 무렵의 지하철 안에서 그날의 하늘을 처음으로 보았고, 이미 저녁의 기운이 스며든 그날의 햇살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 다음부턴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고 출입문에 기대어 섰다. 2호선의 지상구간 신대방역, 구로디지털단지역, 대림역. 도림천을 따라 고가철도 위를 달리는 그 세 정거장을 지나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비슷비슷했다. 붉은 벽돌 주택들과 그 사이에 드문드문 솟아 있는 적당히 높은 건물, 아파트 몇 채, 예상치 못한 곳에 불쑥 불쑥 튀어나와 있는 빨간색 십자가, 가끔 하얀색 십자가. 그리고 복도에 널어놓은 빨래와 잔뜩 쌓아놓은 상자들이 보일정도로 지하철 가까이에 서 있는 아파트형 공장들. 그러나 조금씩 달랐다. 가끔 건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 멀거니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고, 어떤 날은 검정 비닐봉지를 든 채 몸빼 바지의 엉덩이 위로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종종 도림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교복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 해질 무렵의 하늘. 구름. 사라져가는 빛을 쫓는 구름, 다가오는 어두움을 피해 모여들고 있는 구름. 빛, 해질녘의 그 빛들에 대하여 나는 말하고 싶었다. 지하철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지만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그 빛에 대하여, 풍경에 대하여. 지하터널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의 그 빛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니 온전히 나만의 순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때론 펜을 꺼내들고 다이어리에, 신대방역에서부터 대림역까지 가는 동안 보이는 것들을 써내려갔다. 그날 하늘의 색을, 그날 구름의 모습을, 그날의 햇빛이 나에게 쏟아지던 순간을 기록했다.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에서 내가 포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모든 순간에 대하여.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그런 기록을 나는 했다. 한 계절 안에서 같은 요일, 같은 시간, 늘 똑같이 정체되어 있는 풍경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달랐다.
그 겨울에서 봄을 지나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더 이상 신대방역과 구로디지털단지역과 대림역을 지나지 않게 되었다. 종종 핸드폰을 꺼내 그 기록을 살펴보아도 뒤늦게 어떤 의미를 발견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기록 당시의 풍경도 잘 떠오르진 않았지만 늘 울컥했다. 또 다시 겨울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사진도 전화번호부도 아닌 그 메모장이 떠올라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알 수 없는 후련함이 몰려왔다.
"평화시장 앞에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자 더욱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화신백화점 6층의 창들 중에는 그중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해질 사태가 벌어졌다. 안의 얼굴에 놀라운 기쁨이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빠른 말씨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서대문 버스 정거장에는 사람이 서른두 명 있는데 그중 여자가 열일곱 명이었고, 어린애는 다섯 명 젊은이는 스물한 명 노인이 여섯 명입니다."
"그건 언제 일이지요?"
"오늘 저녁 7시 15분 현재입니다."
"아.” 하고 나는 잠깐 절망적인 기분이었다가 그 반작용인듯 굉장히 기분이 좋아져서 털어놓기 시작했다.
"단성사 옆 골목의 첫 번째 쓰레기통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두 장 있습니다."
"그건 언제?"
"지난 14일 저녁 9시 현재입니다."
"적십자병원 정문 앞에 있는 호두나무의 가지 하나는 부러져 있습니다."
"을지로 3가에 있는 간판 없는 한 술집에는 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색시가 다섯 명 있는데 그 집에 들어온 순서대로 큰 미자, 둘째 미자, 셋째 미자, 넷째 미자, 막내 미자라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겠군요. 그 술집에 들어가 본 사람은 꼭 김 형 하나뿐이 아닐 테니까요."
"아 참, 그렇군요. 난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는데. 난 그 중에서 큰 미자와 하루저녁 같이 잤는데 그 여자는 다음 날 아침, 일수(日收)로 물건을 파는 여자가 왔을 때 내게 팬티 하나를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저금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 되들이 빈 술병에는 돈이 110원 들어 있었습니다."
"그건 얘기가 됩니다. 그 사실은 완전히 김 형의 소유입니다."
우리의 말투는 점점 서로를 존중해 가고 있었다. "나는…" 하고 우리는 동시에 말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번갈아서 서로 양보했다.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중에서
그래서였을까.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나는 다른 무엇보다 안과 김의 대화에 자꾸 마음이 갔다. 지난겨울 그 무의미한 기록이 떠올랐고, 폴 오스터 소설의 주인공 오기 렌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정각 7시에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담배 가게 모퉁이에 서서 정확하게 같은 앵글로 딱 한 장의 컬러 사진을 찍는 남자. 12년 동안 찍은 사진이 4천 장이 넘는다. 모든 사진들은 똑같다. 똑같은 거리, 똑같은 빌딩의 반복, 지나치게 많은 이미지. 안과 김이 포착하는 것들, 나의 기록, 오기 렌의 사진은 아무런 목적이 없고, 아무런 가치가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다면 그걸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폴 오스터는 말한다. "그(오기 렌)는 세상의 어느 작은 한 모퉁이에 자신을 심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공간을 지킴으로써 그 모퉁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안은 말한다. "그건 얘기가 됩니다. 그 사실은 완전히 김 형의 소유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1964년 겨울의 서울에서 그들이, 2011년 겨울의 서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행동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만 볼 있는 것, 나만 말할 수 있는 것, 나만 느낄 수 있는 것. 목적도, 시간도, 자본도, 의미도 없고, 그 무엇도 아닌 것들. 그리하여 온전히 내 마음 속에 담아둘 수 있는. '그냥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게도 하는 그것이 나를, 그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행위이자 존재증명을 할 수 있는 말과 기록들이 아니었을까. 가장 온전하고 애틋한 자기만의 무엇을.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해, (0) | 2013.09.12 |
---|---|
지난 기록들 (0) | 2013.09.07 |
세 번째 수업_수다스러운 후기 (0) | 2013.08.28 |
장 폴 사르트르 <말> (0) | 2013.08.28 |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0) | 2013.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