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끝내면 타자기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작업해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컴퓨터로 화면을 보면서 곧바로 원고를 수정할 수
도 있고 깨끗하게 인쇄된 자료를 출력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타자기는 아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면 깨끗한 원고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는 것은 참으로 지루한 과정입니다. 책 쓰는 것을 끝내고 난 뒤에 이미 써놓은 것을 다시 베껴 쓰는 완전히 기계적인 작업에 여러 주 동안 매달려야 하잖아요. 이렇게 타자하는 동안 목과 등이 아주 아프지요. 그리고 하루에 20~30쪽씩 타자해도 그 작업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지요. 바로 그 순간 저는 컴퓨터 작업으로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매번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를 때마다 타자기를 쓰는 것이 책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핵심적인지 알게 되지요. 타자는 글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해주며,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고,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느끼게도 해줍니다. 저는 이 과정을 '손가락으로 책 읽기'라고 부르지요. 눈으로 결코 알아차리지 못하는 많은 잘못을 손가락이 찾아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반복, 기이한 구성, 고르지 못한 리듬감 등 말이에요.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는 일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어요. 이제 책을 끝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타자하기 시작하면, 새로 쓸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폴 오스터, <작가란 무엇인가>, p155
'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0) | 2014.06.27 |
---|---|
김소연 <마음사전> (0) | 2014.06.27 |
조너선 사프라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0) | 2014.06.17 |
박수 (0) | 2014.06.15 |
손등은 탔으니까 (0) | 201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