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기원전 1년

백남준은 1962년 한 대담에서 "내 삶은 1958년 8월 저녁 다름슈타트에서 시작되었다. 내게는 1957년이 ‘기원전’ 1년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스승이자 예술 동지인 존 케이지를 처음 만난 해인 1958년이 자신에게 있어 기원전이 되는 해라고 말한 것이다. 존 케이지가 죽은 이듬해인 1993년은 자신의 '기원후' 1년으로 정의했다.


내 생의 시작을 1988년도에 태어났기에 1988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새로 태어났던 해를, 이렇게 말하면 좀 거창한 것 같으니 내게 아주 작지만 은근히 큰 영향을 미친 한 존재를 중심에 두고 시작해보자. 2010년, 모두를 충격과 공포,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던 아이티 대지진에 대한 소식이 조금 시들해질 무렵, 혼자 살게 된지 1년이 되어갈 무렵, 밥통의 밥은 여전히 108시간 째 보온 중일 때가 많지만 머리카락과 설거지 그릇 쌓이는 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일주일에 한 번하는 화장실 청소가 습관으로 굳어지고,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팔을 타고 흘러내려도 유난 떨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기 울음소리 같이 들려 무섭기만 하던 새벽의 길 고양이 소리도 익숙해질 무렵에 그를 만났다.



before 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보고 눈물, 콧물 질질 짜는 나를 보며 친구는 낄낄 대며 도대체 뭐 그렇게 슬픈 장면이 있었다고 우는 거냐며 니 인생은 'before 개, after 개'로 나뉘는 것 같다고 했다. before 개. 나는 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기에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한 적은 있지만 실행에 옮길 만큼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반려견과 애완견(愛玩犬)이라는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해서 크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다. 산책길에 들린 은행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강아지가 너무 예쁘고 품위 있게 생겼다며 “이런 강아지는 보통 얼마나 해요? 얼마면 살 수 있어요?” 라고 물어본 날, 화가 나서 집에 오자마자 사전을 찾아볼 때까진 동물을 ‘사다, 분양받다, 입양하다’라는 서술어의 차이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고백한다. 나는 우리 집 개를 '샀다'.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혼자 살고 있는 나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내손을 잡고 데려간 곳이 애완견분양센터였다. 사실 사는 건지, 입양하는 건지, 분양받는 건지, 그냥 데려오는 건지 관심도 없었다. 내 눈 앞에서 꿈틀거리는, 두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생명체에 정신이 팔려있었으니. 혼자 있을 땐 잘 틀지도 않던 보일러를 24시간 풀가동 시켰다. 약속은 잡지도 않았다. 어린 아이 두고 발길 떨어지지 않는 엄마의 마음이랄까. 데리고 자면 버릇 나빠진다는 말에 푹신한 강아지 쿠션을 사와 재웠다. 엄마 품 그리울 때인데, 엄마 젖 빨 때인데 생각하니 안쓰러워 결국은 데리고 자기도 했지만. 집에 데려온 지 열흘 즈음 되었을 때 개가 녹색 피똥을 쌌다. 가슴이 철렁했다. 끌어안고 한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친구에게 전화해 울며불며 난리 치고 같이 병원에 좀 가달라 했다. 동물 병원도 새벽엔 응급진료비가 붙는 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만날 동물농장에서 보던 장면이지만 동물도 엑스레이 찍고, 주사 맞고, 링거 맞는다는 게, 내가 어렸을 때 그랬듯 쓴 가루약을 물에 타서 먹는 다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기침까지 하기 시작했다.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깨지고 좋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1차 예방접종을 제대로 하긴 한 건지 센터에 물어봐야 될 것 같아 데리고 오던 날 받은 명함을 찾았다. 명함과 함께 그날은 미처 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종이 몇 장이 있었다.


"동물판매 소비자 보호법에 의해 분양 후 15일 이내로 폐사하면 100% 환불이나 동종의 다른 견으로 재분양 받을 수 있습니다." 

구매 후 15일 이내로 제품에 이상이 생기면 100% 환불이나 같은 종류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제품 구매 보증서를 읽는 듯 했다. 뭔가 불편하고 이상했다. 머릿속이 온통 판매, 소비자, 보증서, 환불, 교환…같은 단어의 뜻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그것도 잠시, 피는 나오지 않지만 여전히 녹색 물똥을 먹은 것도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싸며 기침하는 개를 보자니 다른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했다. 내가 갔던 그 24시간 병원이 동네 악질 병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수증을 찾아 다시 계산해보니 과다 청구 되어 있었다. 병원에 가서 영수증을 보여준 뒤 이만 원을 돌려받았다. 이것저것 따질 얘기 준비해가서는 요기가 잘못 된 것 같아서요… 겨우 한마디 뱉어내어 받은 이만 원을 들고 집에 가는 길은 막막하기만 했다. 앞으로의 병원비도 걱정 되고, 생각 없이 좋아만 하던 내가 싫었다. 무엇보다 개를 키워본 경험도 있으면서 무턱대고 내 품에 개를 안겨준, 그러면서 자기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남자 친구란 놈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집에 와서 또다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강원도에서 30년 동안 동물농장을 운영했다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아저씨는 전문 수의사는 아니지만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 줄 테니 100% 신뢰는 하지 말라고 했다. 동물병원 믿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발품 팔아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지긋한 나이의 수의사가 있는 곳을 찾아보라고도 했다. 다음날, 아저씨가 알려준 영양식을 만들기 위해 아침 댓바람부터 동네에서 제법 큰 마트의 정육 코너로 갔다. "소 생 간(肝) 있어요?"


소 생 간 대신 순대 간을 사서 요플레, 사료, 간 1:1:1 비율로 섞어 믹서에 갈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니, 힘이 없어 축 늘어진 채 내게 눈빛만 열심히 보내고 있는 저 개를 보니, 이 개는 더 이상 나의 외로움을, 두려움을 달래주는 귀여운 애완용 강아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거견이다. 반려견이다.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하는 한 존재였다. 그 존재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문득 아직까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초코, 깜시, 똘똘이, 둥둥이... 그러다 떠오른 게 '불끈' 이었다. 이름을 촌스럽게 지어야 오래 산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기도 했지만 '불끈'이란 두 글자엔 정말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뭐 이런 나의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사람은 이름 따라 산다는 말이 있는데 개한테도 해당되는 말인가 보다. 불끈이는 정말 불끈하게 자랐다.



after 개

순대를 먹을 때면 항상 간 빼고 순대만 달라고 하던 내가 이제는 간만 따로 포장해달라고 한다. 버려진 강아지를 데리고 몰래 집에 들어왔다가 들키면 엄마한테 쫓겨나기도 했다. 내가 밥 먹는 걸 얌전히 지켜보지 못하고 기어이 뭔가를 얻어먹고야 마는 불끈이를 보며 개 팔자가 정말 상팔자인가 싶은데 음식물 쓰레기 뒤지는 길고양이들은 그럼 무슨 팔자인가 싶어 고양이 팔자도 상팔자로 만들어주려다 밥셔틀이 되기도 했다.



水平

유난히 다리가 짧은 개라 산책 나가면 사람들은 숏다리라고, 걷는 모양새가 우습다며 놀리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 짧은 다리로 얼마나 빨리 달리는 개인지, 바람의 냄새보다 흙의 냄새를 좋아하는 이 개가 얼마나 작은 것들에 귀 기울이고 코 기울이는 개인지 말이다. 산책하다 말고 내 발밑을 맴돌며 킁킁대고 있는 불끈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궁금해진다. 내가 보는 세상과 불끈이가 보는 세상의 차이, 그 차이는 얼마나 클까? 많이 다를까? 이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어느새 초록으로 물든 잔디를 보며 너도 싱그러움을 느끼는지, 저기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쌩쌩 달리는 차들 앞에선 너도 깜짝 깜짝 놀라는지, 사람들은 땅바닥에 흰 선을 그어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성냥갑 같은 건물을 병풍처럼 세워놓은 채 자기 공간을 유지하는데 전봇대 아래 누렇게 고인 너의 영역은 어떻게 유지되는지. 우리가 늘 산책하는 공원은 나무와 하늘과 구름으로 둘러 쌓여있었는데 어느새 삐쭉삐쭉 솟아난 아파트 단지들을 보면 너도 갑갑한지, 수직의 것들을 올려다보느라 목이 너무 아픈 건 아닌지 말이다. 그 속에서 오늘도 넌 엉덩이를 씰룩쌜룩 흔들며 짧은 다리로 야무지게 걸어간다. 하늘은 이렇게 무서운 수평을 길러내신다.






단 하나의 잠자리가 내 눈앞에 내려앉았다

염주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투명한 두 날개를 水平으로 펼쳤다

모시 같은 날개를 연잎처럼 수평으로 펼쳤다

좌우가 미동조차 없다

물 위에 뜬 머구리밥 같다

나는 생각의 고개를 돌려 좌우를 보는데

가문 날 땅벌레가 봉긋이 지어놓은 땅구멍도 보고

마당을 점점 덮어오는 잡풀의 억센 손도 더듬어보는데

내 생각이 좌우로 두리번거려 흔들리는 동안에도

잠자리는 여전히 고요한 수평이다

한 마리 잠자리가 만들어놓은 이 수평 앞에

내가 세워놓았던 수많은 좌우의 병풍들이 쓰러진다

하늘은 이렇게 무서운 수평을 길러내신다

문태준, <水平>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 <4천원 인생> 안수찬 외  (0) 2013.02.09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0) 2013.02.09
2012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0) 2013.02.09
스테판 말라르메 <시집>  (0) 2013.02.08
<고백록> 장 자크 루소  (0) 2013.01.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