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애가 선머슴아 같이 왜 그러니, 너는 남자로 태어났어야해" 어렸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말도 재미있게 잘하고, 명랑 쾌활한 아이였던 나는, 두 살 아래 남동생이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아이인 게 드러나면서부터 동생과 '성별이 뒤바뀌어 태어났어야 할' 수다스럽고, 덜렁거리고, 조신하지 못한 여자아이가 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여자아이'라면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음악적 소양을 위해 음대라도 보낼 기세로 피아노 과외를 받게 했고, 동생은 태권도 학원에 다니게 했다. 동생이 승급심사를 받던 날 검은 띠와 함께 주먹 불끈 쥐고 찍은 사진은 아직도 할아버지 댁 거실에 걸려 있다(열쇠고리로도 만들어 다니셨다).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내가 자주 듣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밥그릇 뚜껑을 열어 식탁 위에 내려놓다가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엄마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도대체 여자애가 왜 그리 조심성이 없냐고 한다. 곧바로 "그럼 익상이(남동생)는 남자애니깐 그래도 괜찮고?" 받아쳤다. 시건방 떨지 말라며 욕을 한 바가지로 들었다. 가족들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과일 깎기나 설거지 같은 자잘한 집안일을 친척'오빠'나 '남'동생에게 부탁하면, 과일을 예쁘게 깎지 못하면 할머니는 그런 건 '여자'가 해야지 왜 남자들을 시키냐, 시집가서 집안 망신시키겠다는 잔소리와 함께 등짝을 때렸다. 사소한 일이지만 모든 말끝마다 들어가 있는 '여자'라는 단어에 나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울컥했다. 나에게 "가족은 젠더 공장으로 여성 억압의 장소이자 젠더를 인식하"게 해준 아주 훌륭한 출발 지점이었다.
2.
남성과 여성이 연애 관계에 들어서면, 두 사람은 개인과 개인이라는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데 있다. 남성과 여성에게 성과 사랑의 의미는 같지 않다. 연애 관계에 있는 남녀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과 압력 역시 그들의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선 성차별에 대한 불평불만을 가득 품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할을 연애에서는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행했다. 처음으로 연애한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악습'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던 사람인데 그땐 그런 거 몰랐다. 아니, 알고 있어도 문제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성 판타지가 원하는 것은 성애화된 모성, 모성화된 성애이다.
그는 그녀의 배려‧대화‧보살핌 그리고 '오빠', '당신이 최고' 라는 칭찬과 격려를 원한다.
사회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지에 몰두할 뿐, 여성이 자기 몸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여성은 남성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만든다.
그가 원하는 '여성스러움'의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사고 머리를 길렀다. 요리 잘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나선 요리엔 취미가 없는 나 자신과 싸워야 했다. 절대불변 일부일처제를 위해 남자인 친구들은 모두 차단했으며, 연애기간 중에 대쉬한 남자는 "저, 남자친구 있거든요"라는 말로 단칼에 쳐냈다.
여성들은 자신 속에 내재된 풍부한 감성과 사랑의 능력을, 상대 남자의 매력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배려, 보살핌, 사랑의 생산을 위해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는 평소엔 애교를 원했고, 힘들 때면 엄마와 같은 보살핌을 원했다. 엄마 같은 여자 되기, 나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와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천사'였다. 오글거리는 단어였지만 나의 훌륭한 역할수행에 뿌듯함마저 들었다. 2년 반 동안 천사역할에 충실하다가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에게는 반란, 나에게는 혁명이었다. 헤어진 뒤 나는 '세기의 미친년'이 되었다. 천사에서 세기의 미친년은 엄청난 추락이었지만 미친년이 된 내가 좋았다. 더구나 세기의 미친년이라니! 착한 여자는 천당 가지만, 나쁜 여자(미친년)는 어디든 간다.
여성주의는 "나쁜 여자가 천당 간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와 거리가 멀다. 여성주의는 남성을 미워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든 증오든 이제까지 남성에게 쏟았던 기운을 여성 자신에게 돌릴 것을 제안한다.
3.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는 성별화(gendered)된 구호이다.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도 이런 다짐이 필요 없다. 현대 교육을 받고 '아버지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딸도 어머니를 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버리지는 못한다. 버리지 못한 어머니의 시체를 껴안고 울며불며 사막을 헤매는 것, 이것이 딸들의 인생이다. 몇 년 전 내가 쓴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기보다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 그러나 어머니를 만난 순간 나는 길을 잃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주변 친구들 대부분은 엄마와 친밀한 모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나와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특별히 살가웠던 적도 허심탄회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나에게 엄마는 경계 대상 1호였다. 방심하는 순간 허벅지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나는 아빠와의 관계에 집착했다. 우리는 꽤 다정해 보이는 부녀관계를 유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거래였다. 나는 아빠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고, 아빠도 나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다. 아빠도, 나도 포장이 필요했다. 아빠를 잘 따르는 딸과 딸에게 자상한 아빠 코스프레. "가부장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이 어머니와 딸의 연대"라면 내가 아빠 편에 있을 때 아빠는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해체가족이 되면서부터 내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였다. 그러면서도 괴로웠다. 굳이 (겉으로 드러난)원인을 따지자면 모든 잘못의 시작은 아빠인데 나는 왜 엄마만 미워하는 걸까. "나는 어머니를 타자화하는 '명예 남성'이면서 아직도 아버지의 인정을 욕망하는 딸"이었다. 그때 내가 집중했던 건 정신분석학 책이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내가 엄마를 적으로 돌리고, 아빠와의 관계를 욕망했던 건 약 6개월? 1년? 동안 집을 떠나있었던 아빠의 부재 때문이었고, 엄마의 남자친구란 존재는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부재로 이해했다. 나는 완벽한 인과 관계를 추구했다. 그래야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고 내 자신의 불안을 멈출 수 있었다. 다른 상상력과 저항의 지점이 나에겐 없었다.
그동안 내가 여성으로 규정된 정체성에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페미니즘 이론에 대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으면서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거나 공부해보려 하지 않았던 건 새로운 앎을 통해 인식하게 되는 건 다른 상상력과 저항의 지점 혹은 해방감이 아니라 내가 엄마를 바라보는(대하는) 태도, 모녀관계에 있어 나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인지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였다.
어머니 억압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보다 20배는 더 오래되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희망과 자신에게 부과된 희망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제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딸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4.
책을 읽으니 저 밑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부장제로 통용되는 가족제도 안에서의 나, 연애를 하면서 내가 겪은 폭력과 강요된 성역할에 대한 기억,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 '여성주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건 꽤나 불편한 일이었다. 내가 모든 글을 지나치게 나의 경험과 아픔으로만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결핍, 억압, 혼란을 '힘든 현실'로 수용할 때와 '주변적 현실'로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어떻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지, 어디에 서서 고통을 바라보아야 할지"는 지금부터 다시 고민해보려 한다.
5.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밑줄 죽죽 그어가며 읽었다.
"군대 다녀와야 철든다."라는 말은 내가 동생에게 툭하면 내 뱉었던 말이었다. 작년 여름, 동생을 군대에 보낸 뒤부턴 한국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군대라는 제도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주변에 군대 다녀온 친구들 때문에 입도 뻥긋 못하고 또다시 혼자 불평불만 끌어안고 있던 차였다. 군사주의와 남성성뿐만 아니라 성폭력, 성판매 여성, 성매매 같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말해야 하는 건지 조심스러워 멀리했던 문제들에 대해 '남성의 언어'가 아닌 '여성주의 언어'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주의 인식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데 일상을 넘거나 일상을 극복하는 정치가 아닌, 일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변화, 변화를 넘어 변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것, 이것은 삶이 너무 피곤해지는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 피곤함을 계속 안고 나갈 수 있을지. 나는 아직 길을 잃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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