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라르메의 시를 읽기에 앞서, 그의 시에 영감을 받아 만든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을 골라 들었다. 그 중 제일 유명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음악사에 대한 지식은커녕 그냥 오직 ‘듣는 귀’이자 그 순간순간의 느낌에 의지해서 오로지 좋다와 싫다를 구분하는 나에게 드뷔시의 기쁨의 섬,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달빛은 마음이 환상적인 선율, 낭만 그 자체였지만 <목신의 오후>는 이상하게도 나를 오수(午睡)에 들게 했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는 드뷔시가 후기 낭만주의 특히, 당시 음악계를 석권하고 있던 바그너주의와 손을 끊고 작곡한 인상주의 음악의 첫 작품이다. 바그너의 추종자였던 말라르메의 시에 드뷔시가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는 건 특이한 점. 발레리에 의하면 말라르메는 드뷔시가 자신의 시로 음악을 만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시는 이미 음악이며, 그런 시에 곡을 붙이는 것은 시에 대한 공격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말라르메의 시는 음악가들에겐 ‘음악화’의 대상이었다. 드뷔시, 라벨, 메시앙, 메시앙의 제자이자 살아있는 현대음악의 거장 피에르 블레즈(‘스테판 말라르메의 세 편의 시’라는 모음집이 있다)까지.



 2

말라르메의 <시집>을 사고, 처음 황현산 선생님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부터 압도당해서 그런지 책장을 넘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옮긴이의 해설을 해설해 줄 이가 필요했다. 발제문에 멋진 구절이라도 발췌해 집어넣고자 블랑쇼의 책에서 말라르메에 관한 부분을 뒤적거려 보았지만… 아직은 나의 듣는 능력의 부족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작품은 작품을 쓰는 자의, 작품을 읽는 자의 열려진 내밀성이 될 때에만, 말하는 능력과 듣는 능력 서로간의 이의제기를 통해 격정적으로 펼쳐진 공간이 될 때에만 작품이 된다. (블랑쇼)



 3

말라르메의 책(LE LIVRE), 보르헤스의 알렙(Aleph)

말라르메는 "시구를 파들어"가 그 순간의 말에 도달하고 사물을 그 순간에서 지각하려 하고, 시 속에서 낱말들은 "외부의 인상"을 넘어서서, "그것들 자체로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말라르메)가 자신의 시작(詩作)에서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던 것은 ‘오직 한권의 책(LE LIVRE)’, ‘진정한 책’으로서의 완전한 글쓰기, 완전한 텍스트의 창조였다고 한다.김수영과 하이데거≫


세계는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은 이름을 정함으로써 그 대상을 잘(또는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꿈일 뿐이다. 결국 대상을 하나의 명사로 지칭해버리는 것은 자유를 박탈하는 짓일 뿐이다. _말라르메


말라르메의 이러한 꿈은 보르헤스의 ‘알렙(Aleph)’을 생각나게 한다.


이제 나는 말로 형용할 길 없는 내 이야기의 중심부에 이르러 있다. 바로 여기서 작가로서의 나의 절망이 시작된다. 모든 언어는 상징들의 알파벳이다. 그것의 사용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과거를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두려움에 뒤덮인 나의 기억이 간신히 감싸고 있는 그 무한한 <알렙>을 전달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이와 비슷한 경우에 신비주자들은 상징들을 남발한다.

(……)

'알렙'의 직경은 2또는 3센티미터에 달할 듯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크기의 축소 없이 우주의 공간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하나의 사물(예를 들어, 거울에 비친달)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또렷하게 우주의 모든 지점들로부터 그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으르렁거리는 바다를 보았고, 새벽과 저녁을 보았고, 아메리카 대륙의 군중들을 보았고, 검은색 피라미드의 중앙에 있는 은빛 거미줄을 보았고, 부서진 미로(런던시와 같은)를 보았고,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주위의 셀 수 없이 많은 눈들을 보았고, 그중 어떤 것도 나를 비추고 있지 않은 세계의 모든 거울들을 보았고..



 4 

가 꽃이란 그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꽃을 보았다면 너는 그저 그런 꽃 한 송이를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네가 정말로 무심한 상태에서 그 꽃을 보았다면 너는 우주의 한 얼굴을, 지극히 작은 얼굴이지만, 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간다는 것이리라. 생각하는 것의 끝에까지 간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너머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적인 삶은 없다. 게다가 지금 인간적이라 믿고 있는 것이 항상 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극도로 비정한 삶을 인간의 운명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시는, 패배를 말하는 시까지도, 패배주의에 반대한다. 어떤 정황에서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시의 행복이며 윤리이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 이 행복과 윤리가 너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옮긴이(황현산)의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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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는 어쩌면 무심한(혹은 무지한) 상태에서 그의 시를 보았는데, 그건 우주의 한 얼굴을 지극히 작은 얼굴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그의 시를 어떤 해설이나 주석에 의존해서가 아닌 우주의 한 얼굴, 지극히 작은 얼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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