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렀다. 소기의 목적만을 달성하고 지하로 내려와 김밥 한 줄 사먹고 나가려는데. 지하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들. 이들은 왜, 무슨 이유로 백화점에서 그것도 시식코너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까. 백화점 안에도 옷, 잡화, 가전제품 등 여러 매장이 있는데 왜 식품류를 파는 지하를 선택했을까. 시급, 거주지, 교통, 시간 등등 여러 가지 요건을 고려했을 텐데. 그중에 무엇일까. 전부일 수도 있고, 전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엔 뭐가 있을까. 백화점에서의 노동을 선택한 뒤론 어떤 선택권도 없었던 걸까?
(빠른 생일이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 나는 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까. 단순히 ㅇㅇㅈ가 해보자고 해서, 재미로, 라고 말해왔지만 그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지만, 그것이 내 속에서 어떤 내면 기제를 만들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해왔던 아르바이트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고,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을 보았던가. 그런 생각이 드는 저녁이었다.
2.
3호선 교대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러 가는 길. 성형외과 광고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요즘 밖에서 성형외과 광고를 보면 사진이나 카피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성형외과 네이밍 작업을 했고, 현재 성형외과 리플렛 작업이 진행 중이고, 곧 성형외과 판매 화장품 (지면) 광고 제작도 들어갈 테니. 대표 동생이 성형외과 의사인데 최근 개원을 하는 바람에(?) 회사에서 디자인, 광고 관련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퇴근 전, 대표가 본인이 쓴 광고 카피를 읊어주며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웃기만 했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카피는 이제 진부한 측에 속하지 않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진부함을 넘어 한물갔다는 생각. 그러니까 이제 성형수술은 숨길 필요 없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고, 마치 자신의 가치를 한 단계 상승시켜주는 것 마냥 보이는 저 광고들 때문에.
3.
2주 전, 야근하다가 저녁 먹는데 누가 '재미있다'며 틀어놓은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본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TV는 거의 보지 않지만, 리얼리티 쇼가 온갖 자극적인 것들의 총 집합체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MC들의 멘트와 화면 자막들은 충격적이고 역겨웠다. 처음부터 본 것도 아니고,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고, 굳이 검색해보고 싶지도 않지만 지나치게 '남성적'인 스타일을 가진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행동도. 그랬던 그녀가 이젠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 여자가 되었다는 둥, 이제 엄마도 '딸'과 함께 모녀지간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둥.
그들 말대로 '충격'적이었던 건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이렇게도 폭력적이고 자극적이고 천박할 수 있다는 것. 어떻게 인생을 바꾸어주겠다는 것인지, 외모 변화가 '인간승리'라면 이전에 그 사람의 삶은 그대로 부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바퀴족, 바퀴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