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일이 많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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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는 사마천과 <사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중국의 사학자가 쓴 중국 역사서?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이에 굴하지 않고……?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가 고작이다. 몇 마디 더 할 수 있겠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들로 횡설수설 할 게 뻔하니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미덕이겠다. 사마천과 사기뿐일까. 찰스 다윈도 종의 기원도, 프로이트도 꿈의 해석도. 마르크스도 자본론도.
제대로, 정확히 아는 건 없으면서 곧잘 들먹거리 거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중국과 같은 땅덩어리 안에 있으면서도 한국은 늘 중국을 견제하거나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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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마천이 왜 <사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사기>의 구성, <사기> 안에 담긴 가지각색의 인물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간다. 글을 워낙 쉽고 유쾌하게 쓰기도 했지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들이라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와 K는 저자의 사기 완역본 1권 출간 소식을 듣고 서점에 사러 갔는데 두께를 보고 (……)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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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단한 역사서가 전적으로 위대한 한 개인에 의해 쓰여진 건 아니라는 점. 그러니까 히어로물처럼 한 사람의 특출난 재능, 천재성이 아니라 사마천 - 사마천의 아버지 - 시대적 흐름이라는 요소들이 잘 맞물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음을 말해주어 무척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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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사마천은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주체는 수많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자객, 점쟁이, 동성애자, 코미디언에 대한 기록.
사기를 남겨 ‘성일가지언’을 이루어야만 사마천이 궁형을 자청하고 살아남아야 했던 비통한 심경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칫하면 개인적인 원한으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사기를 완성하지 못했거나 사기가 현재 우리가 보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사마천 개인의 한풀이로 끝났겠지요. 사마천은 깊이 있는 생각과 공부를 통해 개인적인 원한을
보편화, 객관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사마천은 관중의 말을 빌려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주머니에 돈이 두둑하면 친구를 만났을 때 돈을 쓰게 되잖아요. 예의와 염치가 생기지요.
명예와 치욕도 경제적 부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창고가 가득 차 있고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한데도 명예를 모르고 치욕도
모르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일까 싶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밖에 없지요.
“예의는 재산이 있으면 생기고 재산이 없으면 사라진다. 이 때문에 군자도 부유해야 덕행을 즐겨 하고, 소인은 부유하면
자기 능력에 맞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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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사기를 읽다> 서문에서 락앤락 성공비법은 알려주었으면서, 왜 KFC 현지화 전략은 그냥 넘어갔을까.
중국 갔을 때 KFC가 맥도날드보다 훨씬 많아서 무척 궁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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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출판사 서양고전 시리즈 무척 재미있다. <종의 기원을 읽다>를 읽으면서 찰스 다윈의 저작과 이론도 흥미로웠지만,
그가 책을 쓰고 연구를 하기 위해 택했던 세심한 방법들에 눈길이 갔고. <자본론을 읽다>는 왠지 모르겠지만 <자본론>은
읽어야 한다는 혼자만의 강박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철학-경제학 수고>를 읽고 이어서 이 책을 읽었는데, 할말이 무척
많아졌다. 그것은 차차 풀어야지. 작년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책사재기를 하던 친구들에게 책 추천을 부탁 받고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