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선시장은 늦게까지 불 밝았지만, 간장 떡볶이 할머니는 안계셨기에 안부를 전할 수 없다. 하필 오늘 읽은 시집 때문에, 하필 오늘 간 술집 이름이 ‘적선동 술집’이었기에 나는 잠시 아, 입이 있는 것들이 되었다. 취하지 않았지만 취한 척 하고 싶었다.
2.
작곡가, 무용가, 작가, 소설가, 화가, 사진가 다들 가(家)인데 왜 시인만은 시인(詩人)일까.
동네 테니스회 야유회 날, 십만 원이면 사슴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우록에 갔다 염소 고기 숯불에 구워 뜯고, 흘러간 옛 노래를 힘차게 부르고, 뚱뚱한 배와 흐벅진 엉덩이 흔들며 요즘 가수들의 춤사위를 잘도 흉내 내어 "나도 얼마나 흔들어댔는지 예술가는 과연 다르다고 칭찬까지 받았다"는 시인을 나는 좋아한다.
3.
비루함은 뭘까
아프다는 건 뭘까
병은 뭘까
그리워하는 건 뭘까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어떻게 해서 밤은 오는가
어떻게 해서 밤은 또 물러가는가
깊은 상처에서 더 깊은 상처로
수물거리며 와서 사라지는 것은
밤인가, 캄캄한 몸인가, 마라
……
오늘밤 너는 얼마나 더 뒹굴어야 하는가
4.
오늘 아침 새소리 말고 귀뚜라미 소리가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은 밤이다.
'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절 증후군 (0) | 2012.10.03 |
---|---|
두 개의 전시, 몇 가지 툴툴거림 (0) | 2012.09.27 |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0) | 2012.09.20 |
마징가계보학, 권혁웅 (0) | 2012.09.14 |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0) | 2012.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