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선시장은 늦게까지 불 밝았지만, 간장 떡볶이 할머니는 안계셨기에 안부를 전할 수 없다. 하필 오늘 읽은 시집 때문에, 하필 오늘 간 술집 이름이 ‘적선동 술집’이었기에 나는 잠시 아, 입이 있는 것들이 되었다. 취하지 않았지만 취한 척 하고 싶었다.



 2.

작곡가, 무용가, 작가, 소설가, 화가, 사진가 다들 가(家)인데 왜 시인만은 시인(詩人)일까.

동네 테니스회 야유회 날, 십만 원이면 사슴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우록에 갔다 염소 고기 숯불에 구워 뜯고, 흘러간 옛 노래를 힘차게 부르고, 뚱뚱한 배와 흐벅진 엉덩이 흔들며 요즘 가수들의 춤사위를 잘도 흉내 내어 "나도 얼마나 흔들어댔는지 예술가는 과연 다르다고 칭찬까지 받았다"는 시인을 나는 좋아한다.



 3.

비루함은 뭘까

아프다는 건 뭘까

병은 뭘까

그리워하는 건 뭘까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어떻게 해서 밤은 오는가

어떻게 해서 밤은 또 물러가는가

깊은 상처에서 더 깊은 상처로

수물거리며 와서 사라지는 것은

밤인가, 캄캄한 몸인가, 마라

……

오늘밤 너는 얼마나 더 뒹굴어야 하는가



 4.

오늘 아침 새소리 말고 귀뚜라미 소리가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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