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라는 직업에도 인턴이 있고 정직원이 있는 줄은 몰랐다. 대기업 영화 제작사에서 6개월 동안 그의 직함은 '시나리오 인턴 작가'였다. 그는 재계약을 앞두고 제출한 시나리오가 통과되지 못하자 사직서를 제출했고, 마지막 월급은 인도행 비행기 티켓으로 바꾸었다. 정직원작가나 인턴작가가 목적은 아니지만, 졸업한 뒤 근근히 생활을 꾸려나가며 글쓰기에 기웃거리고 있던 나는 그에게 든든한 아군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를 걸어 동병상련을 외치더니, 어제는 배낭을 샀고 그저께는 말라리아 예방주사를 맞았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달뜬 목소리로 여행준비 진행상황을 보고 하던 그가 출발 이틀 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짐을 챙기고 있는데 옆에서 도와주시던 어머니가 혼자 중얼거리듯 그러셨단다. "내 아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의 어머니가 말하는'어쩌다 이렇게'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잘 다니다가 1년을 남기고 때려 친 뒤 영화과가 있는 학교에 새로 입학해버린 아들, 학교 졸업하고도 배울 것이 남았다며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간 아들, 취직했다고 속인 뒤 매일 아침 양복입고 모 기업 회장님의 외제차 운전석으로 출근했던 아들, 삼십대 중반을 향해가는 아들, 취직은커녕 인턴이었을지언정 마음만 먹으면 더 다닐 수도 있었던 좋은 회사를 그만두어 버린 아들. 그런 아들에 대한 한탄스러움이었을까. 평소에는 그런 내색도 않던 어머니의 한 마디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절망스럽다고 했다.
이 세상 모든 부모는 그런 말을 하기 위해 존재 한다, 걱정해서 하시는 말이니 너무 담아두지 말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가 말한다. 자신은 영화하는 사람인데 엄마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에 대한 욕망이 생기고 있고, 자꾸 커지고 있다고. 나는 영화하려는 사람이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자마자 아차 싶어 재빨리 덧붙여 물었다. 그런데 그 '평범한 삶'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그는 대답을 못한다. 나 자신에게도 되물어본다. 평범한 삶이란 건 대체 뭘까. 언젠가부터 나 역시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왜 '평범한' 길로 가지 못하고 이러고 있지, 라고.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내뱉은 이 '평범'이라는 단어가 무얼 뜻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단지 '평범'을 '욕망'이라는 단어와 한 문장에 넣고 보니 참 어색한 조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함을 욕망하다.
괜찮은 대학 졸업하고, 스펙 쌓고 좋은 회사 취직해서 다달이 월급 받으며 꼬박꼬박 저축하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 만나 결혼한 뒤 떡두꺼비 같은 자식 낳아 잘 먹고 잘 사며 노후를 대비하는, 뭐 그런 게 평범한 삶이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그런 게 아닐까, 라고 그가 답한다. 난 이런 삶을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힘든 요즘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 도움도 안 되는 말인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에게는 여행가서 '뚝심'을 길러 오라고 했다. 영화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반응, 그런 말 앞으로 수없이 마주하고 듣게 될 텐데 그때마다 무너질 것이냐고. 결국 스스로 뚝심을 기르고, '평범함'을 욕망하게 하는 주변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비록 나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지만 왠지 인도라면 없던 뚝심도 생겨날 것 같으니 힘내라고. 나는 그에게 '뚝심'을 길러 오라고 했고, 그는 알겠다는 말 대신 너도 나와 비슷한 불안 속에 있는 것 같다며 갑자기 우울모드에서 온화모드로 전환한다. 너도 지금 불안 속에 있지만, 너의 불안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는 다른 종류인 것 같다고. 지금의 너는 충분히 잘 하고 있고,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 때문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거 아닐까, 라고 말한다. 갑자기 내가 왜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버렸는지 당황스러웠지만 그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넌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그렇게 계속해서 해 나가다보면 뭔가 하나는 터지겠지. 그러더니 뜬금없이 시를 읽어주겠단다. 그가 쓴 시나리오가 왜 상사 시나리오 작가에게 구박을 받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인의 시였지만 잠자코 들었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해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어쩌면 그도, 나도 조금씩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게 불안을 버티는 '뚝심'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얼음 깔고 눈을 온전히 제 몸으로 받아내기, 살아내기, 버티기. 그가 한 편 더 읽겠단다. 방금 읽은 시를 고른 편집시집에 내가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시도 있단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른 매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序詩>, 이성복
시집『남해금산』의 첫 시다. 정처 없다, 정처 없다. 문득 뜻이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았다. 말 그대로 정한(定) 곳(處)이 없는. [~없이 헤매다(떠돌아다니다) wander(roam) about, aimlessly] '~없이 헤매다' 그리고 'aimlessly' 목적(aim)이 없는(less). 이 뜻이 왜 이렇게 마음을 짓누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처 없다’는 말이 좋다고 했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해주는 시라고 했다. 그런 반응이 부담스러워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는 그대로 정처 없고, 나는 나대로 정처 없다.
나더러 시 한 편 읽어달란다. 편집 시집에 실린 시 한 편으로 이성복 시인을 어찌 말할 수 있겠냐며 내가 호기롭게 꺼낸 시집은
『아, 입이 없는 것들』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내 안에서 캄캄한가
옅은 하늘빛 옥빛 바다의 몸을 내 눈길이 쓰다듬는데
어떻게 내 몸에서 작은 물결이 더 작은 물결을 깨우는가
어째서 아주 오래 살았는데 자꾸만 유치해지는가
펑퍼짐한 마당바위처럼 꿈쩍 않는 바다를 보며
나는 자꾸 욕하고 싶어진다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내 안에서 캄캄해만 가는가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이성복
내가 읽은 시다. 왜 이 시를 읽었느냐 묻기에 내 맘 같아서 읽었다고 했더니 그가 말한다. 그렇게 자기 안에서 무엇이 캄캄해만 간다고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그걸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냐고. 그는 예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난 주변사람들에게도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했다. 너는 너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딱히 숨기려는 것 같진 않지만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은 것 같다고. 그도 항상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봤었고, 나는 그 물음을 되돌려줌으로써 답을 대신했다. 그는 나에게 너는 왜 항상 먼저 대답하지 않느냐고 또다시 되물었다. 나는 침묵했다.
그래, 어떻게 내 안에 꾹꾹 눌러 담은 것들을 말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이전에, 내가 내 안에 꾹꾹 눌러 담은 것들이 무엇일까. 나는 모른다. 아니,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끄집어내려는 순간 그것은 희미해진다. 어쩌면 입 밖으로 내어 그것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목구멍에서 자동 필터링을 한다.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집어 삼킨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린 스스로에게 하고 싶던 말을 입 밖으로, 서로에게 내뱉은 건 아니었을까. 동병상련, 너라는 존재를 빌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는 그렇게 절망과 우울과 약간의 희망 비슷한 걸 가지고 인도로 떠났다. 어디 떠날 수도 없는, 아니 떠나지도 못하는 나는 여전히 정처 없고 불안하다. 그렇다면 이 불안을 견디며 지내는 것도 뚝심 기르기의 지난한 과정일까. 글쎄다. 어쩐지 '나는 자꾸 욕만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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